2018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더비 경매장에서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가 치열한 경쟁 끝에 한화 15억 원에 낙찰됩니다. 낙찰이 되는 순간 그림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서 파쇄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순간 충격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뱅크시가 미리 계획한 이벤트였고 뱅크시는 낙찰되자마자 미리 설치된 리모컨을 몰래 작동해 그림을 파쇄한 것입니다. 이름도 가명인 뱅크시는 얼굴조차 알려진 봐 없어 그 경매장에 있던 사람 중 누가 뱅크시인지 알 수 없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뱅크시의 파쇄된 풍선과 소녀는 3년후 다시 경매장에 등장했습니다. 파쇄된 그림마저 예술로 인정받아 무려 300억 원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 뱅크시는 누구?
뱅크시는 얼굴도 본명도 알려진 봐가 없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1974년 생이고 영국 브리스톨 출신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는 1990년부터 거리에서 그래피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의 집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법으로 잡히면 바로 철창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뱅크시가 생각해 낸 것은 스텐실*이란 기법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스탠실-판에 구멍을 뚫고 잉크를 통과해 찍어내는 일종의 판화 기법
뱅크시는 인적이 드문 늦은 밤 미리 놓은 판을 가져가 스프리이를 뿌려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합니다. 워낙 스피디하게 그린 그림이다 보니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가 들키지 않고 그릴 수 있었습니다.
> 뱅크시가 유명해진 이유
뱅크시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려서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친 환경에 노출된 그라피티는 그 훼손 정도가 아주 큰데요, 뱅크시의 그림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돼도 있는 이유는 1990년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인터넷과 카메라의 기술력 덕분입니다.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업로드만 하면 집에서도 지구 반대편의 뱅크시의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유명세는 고도로 발달된 미디어 덕분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거리의 예술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 그림의 소재
뱅크시의 그림은 단순한 낙서가 아닌 사회적인 이슈와 비판, 일상적인 문제, 정치적인 사건, 세계적인 정세 등을 유머러스하게 바판하고 표현합니다. 이런 그의 그림들은 대중들의 큰 호응은 받았습니다.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진 건물주들은 처음에는 황당해 하다가 그가 유명해지자 벽 앞에 보호막을 설치하는 진풍경도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림이 그려졌다는 이유만으로 건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뱅크시는 그래비티를 넘어 또 다른 시도를 하게 됩니다. 세적으로 잘 알려진 미술관에 자신의 그림을 전시합니다. 하지만 그림은 정식 전시가 아닌 뱅크시가 마음대로 몰래 전시한 것이죠. 뱅크시가 무작위로 전시한 그림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그림을 제대로 관람하지 않는 관람자와 미술관 관계자, 보수적인고 권위적인 예술 관련자들을 모두 비판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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