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완성한 마네의'피리 부는 소년'은 현재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배경에 그림자가 없는 인물, 선명한 컬러로 된 제복을 차려입은 채 소년의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피리를 불고 있는 듯한 자세가 그림의 전부입니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은 인상주의 화가들이게 큰 영감과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마네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 피리 부는 소년 탄생 비화
에두와르 마네는 현대 미술의 창시자, 인상주의 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면서 인상주의의 문을 연 선구자이지만 정작 그는 한번도 인성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네는 권위 있는 살롱에 당선되고 싶어 했고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인정은 받지 못했고 살롱에 출품한 그림들은 번번이 낙선했습니다. 오직 시인 보들레르와 소설가 에밀 졸라 등 소수의 예술인만이 그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 피아를 살롱에 출품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당시 여자의 누드는 신화 속 여신, 종교적인 성스러운 여인 등 실존하지 않은 여인들만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마네는 현존하는 매춘부의 누드를 당당하게 그려 권력층의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여성의 누드를 그린 두 점의 그림은 인정은커녕 엄청난 문제가 되었고 이 일로 마네는 그림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마네가 그린 작품이 바로 '피리부는 소년'입니다. 예전 그림과는 달리 여성의 누드가 전혀 없습니다. 그림 속 모델은 실제 근위대의 소년이라는 의견과 마네의 모델이었던 빅토르 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적인 모습을 감춘 빅토르 란을 소년의 모습으로 꾸몄다는 것이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 피리 부는 소년
군복을 입은 소년은 정면을 응시하고 어딘가 바라보며 피리를 불기 위한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행동을 포착하는 마네의 특유의 관점이 잘 묘사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림의 배경이 전혀 없이 회색 톤의 단일 색감과 검은 색, 흰색, 빨간색 등 최소한의 색만 사용해 간결하게 그렸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림자도 거의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발아래 나타난 짧은 선 하나가 그림자의 전부입니다. 바지에 주름이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명암이 없기 때문에 그림은 전혀 입체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면적인 느낌입니다.
마네는 명암을 강조하는 대신 강한 색감의 대비로 형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톤이 낮은 배경 대신 소년의 선명한 옷의 컬러가 강조되면서 평면의 그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입체감의 효과는 선명한 색의 대비뿐 아니라 그림 속 소년의 눈동자의 생생한 생동감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네의 단순한 배경 처리는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고 명암 처리를 하지 않는 대신 강렬한 색감으로 입체감을 표현한 것은 당시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무시한 파격적인 화풍이었습니다. 이런 기법은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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