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는 화가들에게 있어 참 좋은 주제거리였습니다. 그리고 화가들은 수없이 많은 신화 중 사투르누스가 아이를 잡아먹는 그림도 그렸고 대부분 끔찍합니다. 고야도 '아이를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를 남겼습니다.
어둡고 음침한 검은 배경, 흩날리는 백발, 흰자 위가 드러날 만큼 크게 뜬 눈, 필요 이상으로 움켜쥔 아이의 몸통에서 아이의 팔과 목은 보이지 않은 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측은합니다. 그림 속 사투르누스는 눈을 크게 뜨고 눈썹로 아래로 처진 채 삼키고 있는 것에 후회라도 하듯 아이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고야는 왜 이렇게 측은하면서 잔인한 그림을 그렸을까요?
> 사투르누스는 누구?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농경의 신입니다. 그는 아버지이며 창조의 신이던 우라노스의 악행과 폭정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손에 든 낫으로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 죽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최고의 신이 됩니다. 우라노스는 죽어 가면 저주의 말은 남깁니다.
"너도 네가 낳은 아이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때부터 사투르누스는 저주당할까 봐 두려워 아내 레아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잡아먹었습니다. 고야는 이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사투르누스는 우라노스의 말대로 자신의 아들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그가 삼킨 6명의 아이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핵심 신들이 되고 사투르누스를 죽인 아이는 바로 제우스입니다.
> 검은 그림 시리즈
고야는 말년을 자신의 별장에 기거하면서 '검은 그림' 14점의 벽화를 남겼습니다. 오직 고야 자신만 보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 생전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검은 그림' 시리즈의 전반적인 색감은 블랙이고 주제도 어둡습니다.
고야는 카를로스 3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본격적인 궁정 화가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소망하던 궁정 화가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3년만에 청력을 잃게 됩니다. 그가 청력을 잃고 상실감에 '검은 그림' 시리즈를 그린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그가 남긴 명작들이 그의 인생 후반부에 대부분 그려진 걸 보면 청력 장애와는 무관합니다.
>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탄생 배경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으로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카를로스 4세의 무능과 정치적은 혼란을 틈타 그의 형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국왕으로 앉힙니다. 고야는 친프랑스파로 나폴레옹을 옹호하는 입장이어서 내심 기뻤습니다. 하지만 새로 즉위한 보나파르트는 고야의 생각과는 달리 잔인하고 끔찍한 참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1808년 5월 2일 보나파르트를 반대하는 스페인 시민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서게 되고 프랑스군은 무고한 시민에게 총을 겨눴습니다. 고야는 그때의 참상을 그림으로 남겨 하루아침에 사회적 현실을 고발하는 저널리즘 화가가 됩니다.
나폴레옹이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할 거라 믿엇던 고야는 학살과 전쟁, 인간의 무한한 욕심과 잔인함만을 보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자 나폴레옹과 보나파르트도 물러갑니다. 그리고 스페인을 카를로스 4세 아들 페르난도 7세가 왕으로 복귀를 했고 고야는 여전히 궁정 화가로 자리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페르난도 7세는 보나파르트 못지 않은 무서운 폭정을 휘두르는 왕이었습니다. 이단 심문은 다시 부활되고 자신의 말이 곧 법이 되는 독재 정치를 하게 됩니다. 고야는 혼돈의 국정과 페르난도 7세의 손에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무엇보다 인간의 더러운 욕망과 실상으로 궁정 화가에서 물러납니다. 그는 별장에서 머무르며 벽화에 자신이 보았던 참상들을 벽화로 남겼습니다. 14점의 이 벽화는 '검은 그림' 시리즈라 불리고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도 그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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