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무는 들판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남녀, 그리고 그들 주위에 있는 농기구, 바구니,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경건한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라면 아마 장 푸랑수아 밀레의 '만종'이 떠올려집니다. '만종'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복제되어 팔린 그림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농사를 마친 농민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목가적이라 보는 사람들에게 안락함을 느끼게 합니다.
> 만종의 이름
'만종'의 의미는 저녁에 치는 종을 뜻입니다. 19세기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로 아침, 점심, 저녁 3번 교회에서 종을 치면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이 제목은 사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에서만 불려지고 원래 제목은 프랑스어로 '랑젤뤼스(L;Angelus)'입니다. 가톨릭에서 사용되는 기도문으로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고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신 마리아 님, 은총이 가득하신 기뻐하소서"의 내용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는 모습을 담은 수태고지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만종'은 1857년 미국의 토마스 애플턴의 의뢰로 완성된 그림입니다. 그는 아일랜드 이주자였고 19세기 아일랜드 감자 기근에서 영향을 받아 밀레에게 작품을 의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원래 그림의 제목은 '감자 수확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완성되고 애플턴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름을 사지 그림을 사지 않았고 밀레는 '삼종기도를 위해 일을 멈춘 남녀'로 제목을 바꾸고 이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하면서 다시 '저녁의 삼종 기도'라 한 번 더 바뀌게 됩니다.
>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한 만종
현재의 '만종'은 세계적인 명작이지만 처음부터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만종'을 그릴 당시 밀레의 경제적 상황은 물감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거기다 그의 그림을 사려는 하는 사람조차 없어 생활고는 더해갔습니다. 어느 날 한 콜렉터가 당시 1천프랑을 주고 이 그림 사지만 이후 가격을 내려도 사려는 사람이 없자 전시장만 전전했습니다.
밀레의 그림이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당시 화풍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는 신이나 귀족의 화려하고 웅장한 화풍이 유행을 했었고 밀레도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다른 화가들과 차별화되지 못해 그저 그런 화가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거기다 파리 박람회에 출품한 그림들은 인기가 없었고 설상가상 아내마저 패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많은 악재들을 견디다 못해 화려한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이주를 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농촌의 풍경과 일상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밀레가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 때 부터였습니다. 1848년 프랑스는 2월 혁명과 함께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으로 분리되면서 국가의 주권이 노동자에게 힘이 쏠리게 됩니다. 밀레의 그림들은 성실하게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을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 노동자가 국가의 주인이 되는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밀레는 농촌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밀레의 그림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위험하고 선동적이며 사회주의 좌파라 여기며 정치적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정작 밀레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어릴 적 보았던 전원의 풍경과 농민의 모습을 담아 돈을 벌고 싶었을 뿐입니다. '만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변화와 함께 밀레의 명성과 성공은 계속되었고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그의 인생의 정점을 찍습니다. 이 시기에 완성된 밀레의 대표작들은 현재까지 세상의 주목을 받고 그의 사후에도 이어져 전 세계 미술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 밀레를 사랑한 반 고흐와 달리
밀레 그림의 핵심은 농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포인트라 할 수 있습니다.
반 고흐는 목가적인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고 그를 만난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이라 칭했고 만종을 시작으로 그의 그림을 응용하기도 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 달리 역시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는데 밀레에 대한 책을 출판하기도 하며 오마주한 작품까지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독 '만종'에 깊은 관심이 깊어 그림에 대해 특별한 해석을 해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종'을 평화롭고 경건하다는 평을 하는데 달리만은 그림 속 농민들은 땅 속에 묻힌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했습니다. 평소 워낙 개성이 독특한 화가였던 달리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았지만 그의 강력한 주장에 루브르 미술관에서는 만종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땅 속에서 작은 관의 형체가 잡혀 놀라게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체가 워낙 불분명해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었지만 일부 학자들의 달리의 가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밀레가 단지 평화로운 모습만을 그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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