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다고 평가받는 그림은 단연 윤두서의 자화상일 것입니다. 부리부리한 눈과 한 올 한 올 가지런히 빗은 듯한 섬세한 수염, 정밀하게 그려진 얼굴, 하지만 몸은 없습니다. 이 자화상은 1710년 조선 숙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 윤두서의 자화상이 특별한 이유
1. 자화상
유럽에서는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어 자화상을 그렸지만 조선 시대에는 자화상이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은 다른 대상을 보고 그린 초상화였는데 그 이유는 화가의 계급과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화가는 크게 선비 화가와 화원, 2부류가 있습니다.
선비 화가는 신분이 높았고 화원은 조선의 관청인 도화서에서 그림을 담당한 사람들로 신분이 낮았습니다. 선비 화가들은 그림에 의미와 철학을 담아 격조 높은 그림을 그린 반면 화원은 요청받은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 국가의 행사나 임금의 어진 등 기록을 하기 위한 그림들입니다.
선비 화가는 자신을 그림의 모델로 할 수 있지만 화원보다는 묘사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자화상을 그릴 이유도 기량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조선 시대 자화상은 흔한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윤두서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대부 출신이었고 그림 솜씨는 화원 못지않게 뛰어났습니다. 그가 자화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숨어 있어 윤두서의 자화상은 아주 특별합니다.
2. 정면 구도
조선 시대의 인물도는 왼편 사선 방향으로 보는 것는 측면 구도가 일반적입니다.
측면 구도는 정면에 비해 얼굴의 가려지는 부분이 있어 묘사할 부분이 적어 표현하기가 쉽고 인물을 좀 더 입체감있게 표현할 수 있어 현실감을 더할 수 있습니다.
정면 구도는 음영과 비율, 요소 들을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면 그림이 심심하고 평면적으로 보이는 단점이 있습니다.
윤두서가 정면구도는 전혀 다른 기법으로 접근합니다. 선을 중심으로 각 부위별로 그림자와 빛을 세밀하게 묘사해 입체적인 얼굴을 그렸습니다. 또, 눈가의 주름, 얼굴의 근육까지 그려 넣어 정면 구도임에도 입체감과 생동감 있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동양의 그림은 눈을 통해 그림 속 인물의 내면과 성격, 인상 등을 전달하고자 했는데 윤두서는 정면을 응시한 눈은 그림을 보는 사람과 자신의 눈을 마주하도록 구성해 강렬한 눈빛으로 그의 생각과 성격이 느껴지는 듯 한 그림을 완성해 냅니다. 그는 정면 구도를 통해 눈에 더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3. 탕건
또 하나 포인트는 머리에 쓴 모자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윤두서가 쓴 모자는 탕건으로 그림에서는 반이 그림 밖으로 나간 모습입니다.
탕건은 감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관직, 벼슬을 상징합니다. 숙종 때에는 당쟁이 가장 심했던 시기로 집권 세력에 따라 역모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윤두서는 사대부 출신으로 관직에 올랐지만 역모에 휘말려 가족들이 거제도로 유배를 갔고 윤두서 역시 관직을 내려놓고 남은 생을 고향 해남에서 보냅니다. 자화상은 그 시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나면 그림 속 탕건이 다르게 보입니다.
입신양명의 꿈꾸던 사대부, 권력 다툼으로 음모에 휩싸여 몰락한 선비, 껍데기뿐인 명예와 관직,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얼굴, 그리고 허리가 잘려나간 탕건은 윤두서의 인생과 내면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4 세밀한 묘사
조선 시대에는 일호일반의 미학 이론이 있습니다. 매우 세밀한 묘사를 그림의 미덕으로 보았는데 실제 초상화에서는 아주 리얼하게 사실적인 모습은 담았습니다. 얼굴의 점, 곰보 자국 등까지 솔직하게 그려내어 덕분에 초상화의 주인공의 피부 질환 연구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은 시대를 앞서나간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유는 각각의 디테일들이 이전의 묘사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윤두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무수히 많이 그려진 수염은 한 올 한 올마다 굵기와 길이가 다릅니다. 심지어는 콧 속의 털까지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그리고 윤두서는 평소 안경을 썼는데 눈 주위에 안경에 눌린 자국까지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5. 생략된 부분들
당대 일반적인 추상화는 전신을 그렸다면 윤두서는 몸통은 생략하고 탕건의 윗부분은 잘려 나갔고 자세히 들려다 보면 귀도 없습니다.
몸 부분이 생략된 것은 최근 연구를 통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X선, 자외선 분석 결과 옷깃과 옷 주름 등이 선명하게 나타나 상반신 자화상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오면서 보관 미숙으로 퇴색되어 상체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워진 것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만들며 완성된 그림보다 상반신이 생략된 현재의 모습이 대중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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