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가 남긴 30여 점의 자화상 중 인상 깊은 작품이라면 아마 '귀가 잘린 자화상'이 아닐까 합니다. 한쪽 귀를 붕대로 칭칭 감고 담담한 표정은 보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흐의 잘려진 귀는 오른쪽인데 자화상에는 왼쪽 귀가 잘렸습니다. 고흐는 거울에 비춰진 모습을 보고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고흐의 잘린 귀를 둘러싸고 누가, 왜 잘랐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분분합니다.
> '귀가 잘린 자화상'의 탄생 이야기
1. 고흐가 직접 잘랐다?
가장 유력한 설로 이야기는 고흐가 아를로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고흐는 1888년 파리에서 평소 생각해왔던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남프랑스 아를로 갑니다. 노란 집에 거쳐를 마련하고 화가들을 불러들이지만 뜻대로 성사되지 않죠. 이 사실을 안 동생 테오는 고갱을 설득해 아를에 정착하는데 성공을 하고 고흐가 고갱의 동거는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동체 생활도 2개월만에 파국을 맞이합니다. 성격부터 생황 패턴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사람은 2개월동안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어느 날 고갱은 고흐가 심하게 싸우고 노란 집에서 나와 홍등가로 향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뒤따라 온 고흐는 고갱에게 신문에 난 기사 하나를 보여줍니다. 기사의 내용은 연쇄 살인범이 잡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평소 연쇄 살인범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눴습니다.
고갱은 고흐와 싸울 때마다 파리로 가겠다고 협박을 했고 고흐는 " 갈 테면 가봐라"라고 맞받아 쳤습니다. 하지만 고흐의 속마음은 진짜 고갱이 떠날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신문의 기사는 고갱을 볼 핑계 거리에 불과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고흐는 홍등가를 찾아가 라셀이라는 직원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고 봉투를 열어본 직원은 화들짝 놀라며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봉투 안에는 고흐의 잘린 귀가 들어 있었습니다. 평소 고흐와 친하게 지내던 우체국 직원 조셉 롤랭은 그를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동생 테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고흐가 귀를 보내려고 한 사람은 고갱이었습니다. 자신의 삐뚤어진 마음의 표현과 그가 아를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굳은 뜻으로 자신의 귀를 잘라 보낸 것이었습니다.
2. 동생 테오의 결혼
고흐는 테오가 약혼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불안감에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흐는 정신적으로 유약했습니다. 테오가 결혼을 하면 자신에게 오는 지원과 관심이 끊길까 봐 걱정만 하다가 결국 자신의 화를 감당하지 못해 폭발을 해 귀를 잘랐다고 합니다.
3. 고갱이 귀를 잘랐다?
2008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두 예술학자는 고갱이 잘랐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힌트를 얻었습니다
"나나 다른 화가들은 붓과 펜만 가지고 있어. 하지만 고갱은 노란집 방에 펜싱 칼과 마스크, 장갑을 달라며 시끄럽게 요구했어"
평소 펜싱을 좋아했던 고갱은 장비를 아를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싸움은 결국 몸싸움으로 이어졌고 고갱은 화를 주채 못해 펜싱 칼을 집어 들고 고흐의 귀를 잘려버립니다. 고갱은 고흐에게 심한 상처를 입힌 후 혼자 파리로 돌아간 후 지인들에게 노란 집에 있는 자신의 옷들을 보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평소 아끼던 펜싱 칼만 언급이 없다는 점을 들어 고흐의 귀는 고갱이 잘랐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사라진 펜싱 칼은 고갱이 론강에 버렸다고 합니다. 고흐는 고갱과 싸움이 잦았지만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알면서도 경찰에게 말하지 않았고 치료를 마치고 돌아와 노란 집의 자신의 방에서 쓸쓸하게 붕대에 감긴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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