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발톱을 세운 듯한 파도와 파도에 휘말린 작은 배들 배에 매달린 사람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후지산이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금세 파도가 덮칠 듯 한 생동감이 넘치는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도 그림 일본 우키요에의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입니다. 특유의 화려하고 풍부한 색감과 힘이 넘치는 표현력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유럽의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면서 모네와 고흐, 심지어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 우키요에
우키요에는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닌 목각 판화입니다. 나무틀에 그림의 모양을 새겨 넣어 잉크를 발라 찍어낸 인쇄물로 일본의 일상을 소재로 한 판화를우키요에라고 합니다. 한번 틀을 만들어 놓으면 계속 찍어 낼 수 있어 우키요에가 유행하던 1700년대 당시 우동 한 그릇과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을 만큼 저렴했습니다. 우키요에는 부유하는 세상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짧은 인생을 들뜬 기분으로 살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키요에의 그림은 서민들이 즐기는 일상과 풍류를 소재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
우키요에 화풍을 대표하는 화가는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를 그린 가쓰시카 호쿠사이입니다. 그의 손재주를 알아본 화가는 그를 우키요에에 입문시킵니다. 평소 스승을 존경했던 호쿠사이는 스승의 그림을 모방했고 점점 그림에 자신감이 생기자 그만의 독창성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독창성은 대중들에게 통했고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못마땅한 스승은 호쿠사이와 사이가 벌어집니다.
이후 호쿠사이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70세 노인이 되어도 손자의 도박빛을 갚기 위해 그림을 계속 그리게 됩니다. 19세기 초 일본에서는 여행이 유행을 했고 호쿠사이는 그 흐름에 발맞춰 후지산의 절경을 담은 후지산 36경을 만들기로 합니다. 후지산은 일본에서는 여행지이며 신성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호쿠사이는 단순히 후지산만 그리지 않고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서민들의 일상도 함께 담아냅니다.
>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는 후지산 36경 포스터 중 하나입니다.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은 도쿄만 근처 바다로 추정이 되는데 이 곳은 그림에 표현된 것처럼 거대한 파도를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림 속 배는 어선과 화물선 역할도 동시에 담당하던 특수한 배였습니다.
그림 속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보이지만 배에 실린 물건을 어디론가 옮기려는 하고 모습입니다. 그림의 핵심인 후지산은 저 멀리 보이고 눈이 막 녹기 시작한 봄으로 추정이 됩니다. 일본에서는 새해 가장 처음 잡힌 참치를 아주 귀하게 여겨 높은 값에 팔리는데 지금도 이어지는 전통이기도 합니다. 그림의 사공들은 봄에 처음 잡힌 참지를 거센 파도를 뚫고 육지로 옮기고 있는 중입니다.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는 파도가 주제가 아닌 후지산 근처 바다에서 봄마다 행해지는 참치 잡이 일상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이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에는 거대한 자연 앞에 사람은 나약한 존재라는 해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높은 파도를 이겨내는 어부들의 끈기와 용기를 표현한 그들의 거칠지만 소박한 일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 유럽에으로 간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
호쿠사이가 활동하던 1830년대는 쇄도 정치로 인해 외국인의 통제가 심했고 단 한 곳 나가사키에서만 외국인과의 무역이 가능했습니다. 나가사키를 드나들던 네덜란드의 상인을 통해 일본의 그림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도 나가사키를 통해 전파되었을 겁니다.
이 그림이 유럽인들이게 인상적인 것은 원근법의 사용과 파도의 색감입니다. 푸른 파도에 쓰인 색은 프러시안 블루로 인간이 만든 최초의 합성 안료로 1740년 프러시아에서 발명한 안료입니다.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던 당시 유럽은 사진기의 발달로 그림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화가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때 일본에서 들여온 우키요에는 화가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 사실과 동떨어지지만 개성이 넘치고 평면적인 그림은 유럽인의 눈에는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이 이국적인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자신의 그림에 우키요에를 배경으로 넣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예술을 유럽 예술에 스며든 것을 자포니즘이라 했고 반 고흐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파도에 빠져들면서 또 다른 화풍으로 이어졌는데 바로 인상주의의 탄생입니다. 이들이 그림에 표현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 아닌 화가가 재해석한 인상이었고 그 핵심에는 호쿠사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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