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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곤 실레의 '추기경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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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도에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하는 두 종교인,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빛, 강렬한 레드와 대비되는 어둡고 우울한 색으로 그려진 '추기경과 수녀'는 보기에도 정말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워보입니다. 에곤 실레는 왜 이런 그림들을 그렸을까요?

추기경과 수녀

> 에곤 실레

에곤 실레가 처음부터 한눈에 보기에도 망측하고 야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어릴 적 그는 아버지를 따라 기차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는 기차 차창 밖의 풍경에 매료되어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정식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에곤 실레의 풍경화의 실력은 화가라 해도 믿을 만큼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화풍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

생전 성병과 정신병을 앓았던 아버지의 죽음에 어머니는 전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에곤 실레는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을 합니다. 기대감에 부풀어 입학한 아카데미였지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교육 방식이 에곤 실레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성실히 학교 방침에 따랐지만 교사와 빈번히 갈등을 겪은 탓에 교사는 에곤 실레를 더이 상 학생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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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교사와 갈등만 있던 에곤 실레에게 화가 클림트가 등장합니다. 클림트는 당시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클림트는 자유로운 표현 활동을 추구하는 분리파*를 이끌며 오스트리아 미술계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분리파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독일 미술가들이 전통 미술 아카데미에서 나와 결성한 미술가 조합.

교사들은 지나치게 자유로웠던 클림트의 사상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견제를 했고 그럴수록 학생들은 분리파에 더욱 빠져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에곤 실레도 있었습니다. 클림트는 에곤 실레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와 뭉질적인 후원자까지 소개해 줍니다. 에곤 실레는 분리파와 꾸준한 교류 속에 아카데미를 그만 둡니다.

 

클림트의 화풍은 인간의 내면을 그림으로 전달하고자 했고 그런 그의 사상이 에곤 실레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에곤 실레는 자신만의 화풍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 계기가 됩니다. 죽음의 공포, 성에 대한 욕망, 인간의 실존, 그가 생각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어려운 주제였습니다. 그는 이런 무거운 주제들은 불안에 휩싸인 인간으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생각과 고뇌에서 드디어 그림이 완성됩니다. 

추기경과 수녀

> 추기경과 수녀

성직자를 주인공으로 한 발칙한 그림

무름을 꿇고 기도하는 남자는 클림트의 키스가 연상됩니다. 클림트의 키스가 황금을 이용한 화려한 모습이라면 에곤 실레는 붉은색과 블랙에 가까운 어두운 색으로 강렬하게 대비가 됩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불안한 표정도 유독 도드라집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진실과 본성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라면 성에 대한 욕망을 숨길 수 없고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곤 실레의 그림은 솔직합니다.

신화나 상상화 그린 고전의 그림들은 이상적인 비율로 그려졌지만 에곤 실레의 그림은 다릅니다. 생기를 잃은 눈과 야윈 몸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며 정색을 하거나 불쾌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럴 때마다 에곤 실레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로틱한 그림에도 신성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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