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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고갱이 타히티로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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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인 색채, 고흐의 친구이면서 영원한 라이벌인 고갱은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는 반항아, 이단아로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였고 화가로서도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고갱은 프랑스 태생이지만 많은 작품을 머나먼 타지에서 그립니다. 특히 고갱의 명작들은 타히티에서 완성됩니다. 고갱은 왜 타히티로 갔을까요?

> 유년 시절

1851년 프랑스는 왕권을 거머쥔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자 정치적인 문제로 고갱의 가족들이 탄압을 받았고 페루로 망명하던 배 안에서 아버지는 사망합니다. 고갱은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유년시절을 페루 리마에서 보내게 됩니다. 몇 년 후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어린 시절 페루의 풍경은 고갱의 머리에 고스란히 새겨지게 됩니다.

 

> 청년 시절

고갱은 화가가 되기 전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선박의 선원부터 증권 거래소 등에서 일을 하며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전시회를 드나들며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림을 사기도 하고 그림을 배우는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살롱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시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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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가 되다

그러던 중 프랑스의 증권이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고갱은 화가로 전향아려는 고민을 하고 결국 화가가 됩니다. 파리에 정착한 고갱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을 그렸고 주로 인상주의 풍경화를 그립니다.

그러다가 그의 화풍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는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원시적인 모습이나 내면의 상상 등 독창적이면서 상징적인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단일하고 과감한 색, 보색을 이용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 그림을 위해 떠나다

결국 고갱은 자신의 원시적인 소재의 그림을 위해 도시를 떠나게 됩니다. 파나마의 삶은 녹녹지 않았지만 고갱만의 화풍을 서서히 찾아갑니다. 하지만 파나마에서의 생활은 원시 그 자체여서 다시 파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수집가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고흐의 동생 테오입니다.

테오와 고흐, 고갱은 가깝게 지냈고 고흐는 고갱의 그림에 매력을 느껴 최고의 화가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고흐가 파리로 떠나 아를로 정착할 때 고갱도 함께 하지만 성격이 전혀 달랐던 두 사람을 결국 헤어집니다.

이후 고개은 프랑스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립니다. 고갱의 그림은 더욱 원시적으로 변화했고 고갱은 그림을 위해 더 먼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타히티로 갑니다.

> 타히티

타히티에 도착한 고갱은 실망합니다. 프랑스의 식민지기도 했던 타히티는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원시적인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림을 그렸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그림을 팔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다양한 사건들에 휘말려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고갱은 다시 타히티로 행합니다.

그는 더 원시적인 곳으로 가도 싶었고 그 곳을 도미니크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고갱은 이 시기에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매독에 걸리는 등 건강 악화와 심지어 딸의 죽음 소식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느끼고 유작을 남기기로 합니다.

바로 그 그림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그림은 그가 추구한 원시적인 표현과 자신의 생에 대한 회고들이 담겨 있습니다. 1903년 고갱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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